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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심할 때 진통제 한 알이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동기가 진통제를 며칠째 먹으면서도 점점 더 나빠지는 걸 눈앞에서 보고 나서야, 두통을 그냥 넘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두통은 부위와 양상만 잘 살펴도 원인이 절반쯤 보입니다.

두통 부위가 말해주는 것들
일반적으로 두통은 그냥 머리가 아픈 것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증의 위치 하나만으로도 원인의 방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머리 전체를 조이듯 누르는 느낌이라면 긴장형 두통(tension-type headache)을 먼저 의심합니다. 여기서 긴장형 두통이란 목과 어깨 근육의 과긴장이 두개골 주변 근막까지 퍼지면서 생기는 두통으로, 스트레스와 잘못된 자세가 주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한쪽 관자놀이 쪽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빛이나 소리 공포증과 함께 온다면 편두통(migraine)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동기는 처음에 관자놀이 쪽 통증을 편두통으로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옆에서 보니 양상이 달랐습니다. 고개를 앞으로 숙일 때마다 통증이 급격히 심해졌고, 이마 아래와 광대뼈 주변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더니 "윽" 하고 뒤로 물러날 만큼 압통이 강했습니다. 이건 편두통의 전형적인 패턴이 아닙니다. 부비동염(sinusitis), 즉 코 주변 공기 공간에 염증과 농이 차면서 생기는 압박성 두통의 특징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 머리 전체 압박감 → 긴장형 두통, 목·어깨 통증 동반 여부 확인
- 한쪽 관자놀이 욱신거림 + 빛·소리 민감 → 편두통 가능성
- 이마·광대뼈 압통 + 고개 숙일 때 악화 → 부비동염 의심
- 한쪽 눈 주변 극심한 통증 + 눈물·콧물 동반 → 군발두통(cluster headache) 가능성
- 갑작스럽고 생애 최악의 두통 → 즉시 응급실, 지주막하 출혈 배제 필요
진통제로 덮는 것의 위험성, 약물과용 두통
두통이 생기면 타이레놀이나 이부프로펜부터 꺼내는 게 워낙 습관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저도 가방에 늘 진통제를 챙겨 다니면서 주변 동기들에게 나눠줬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동기 일을 겪고 나서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두통에 진통제를 먹으면 낫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반쪽짜리 사실입니다.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나 NSAIDs 계열 소염진통제를 주 2~3회 이상 만성적으로 복용하면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중추 감작이란 통증을 처리하는 뇌와 척수의 신경계가 점점 예민해져서, 원래는 통증으로 느끼지 않을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진통제를 먹어야만 버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약물 과용 두통(Medication Overuse Headache, MOH)입니다.
약물 과용 두통이란 진통제를 오히려 두통의 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역설적인 상태입니다. 두통이 무서워 약을 먹었는데, 그 약이 두통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세계두통학회(IHS) 기준으로는 단순진통제를 월 15일 이상, 트립탄이나 복합제를 월 10일 이상 사용할 경우 MOH로 진단합니다(출처: 국제두통분류 ICHD-3). 제 동기가 딱 이 경로로 가고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 내내 진통제를 하루 한두 알씩 연거푸 먹으면서도 통증은 줄기는커녕 더 심해졌으니까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단순한 공식이 두통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읽을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 직접 눈앞에서 보고 나니 전혀 다르게 와닿았습니다.
부비동염이 두통을 만들어내는 방식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제가 동기를 이비인후과로 데려가야겠다고 확신한 건, 두통의 패턴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픈 부위 자체보다 "어떨 때 더 심해지는가"가 결정적인 단서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거나 코를 훌쩍일 때마다 통증이 급격히 심해지는 것은 두개내압의 변화나 부비동 내 압력 변화와 관련된 증상으로, 혈관성 두통이나 긴장형 두통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패턴입니다.
부비동(paranasal sinus)이란 코 주변의 뼈 속에 있는 공기로 채워진 공간들을 말합니다. 이마 안쪽의 전두동, 광대뼈 쪽의 상악동, 눈 사이의 사골동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감기 바이러스 감염 후 이 공간에 세균이 번식해 농이 차기 시작하면, 점막이 붓고 배출구가 막히면서 내부 압력이 올라가 극심한 압박성 두통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부비동염, 흔히 말하는 축농증입니다.
제가 동기의 이마 아래와 광대뼈 주변을 가볍게 눌렀을 때 강한 압통이 확인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부비동에 농이 차 있으니 그 위를 누르면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태에서 진통제만 계속 먹었다면 염증이 주변 조직으로 퍼져 안와봉와직염이나 두개내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비인후과에서 촬영한 결과, 예상대로 전두동과 상악동에 농이 가득 찬 것이 확인됐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이틀 복용하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급성 부비동염의 경우 적절한 항생제 치료 없이 방치하면 만성 부비동염으로 이행될 확률이 높아지며, 드물게는 두개내 감염으로 진행되는 사례도 있습니다(출처: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두통이 감기 이후에 시작됐거나, 한쪽 얼굴 쪽이 유독 무겁고 고개를 숙이면 심해진다면 이비인후과 진료를 먼저 받아보는 것이 맞습니다.
두통을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 병력 청취부터
간호학을 배우면서 두통 파트를 공부할 때, 교수님이 늘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통증 수치(NRS) 숫자보다 언제, 어떻게, 무엇과 함께 아픈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맞는 말인지는 동기를 통해 직접 확인했습니다. 숫자로 8점이라고 해도, 그 8점의 원인이 편두통인지 부비동염인지 벼락두통(thunderclap headache)인지에 따라 대처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벼락두통이란 생애 최악의 두통이 수초 내에 최고조에 달하는 양상을 말하는데, 이는 지주막하 출혈(SAH)이나 가역적 뇌혈관수축증후군(RCVS) 같은 초응급 질환의 전형적인 신호입니다. 이런 경우는 유예 시간 없이 즉시 응급 CT 촬영이 필요합니다. 집에서 쉬거나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면 안 됩니다.
일상적인 두통 관리에서 제 경험상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두통 일지를 쓰는 것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위가, 어느 정도 강도로, 무엇과 함께 아팠는지를 기록하면 자신만의 패턴이 보입니다. 카페인 과다가 문제인지, 수면 부족이 문제인지, 생리 주기와 연관이 있는지가 일지를 2주만 써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힙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들고 진료를 받으면 의사도 훨씬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방 측면에서는 규칙적인 수면 시간 유지, 장시간 컴퓨터 작업 시 1시간마다 목·어깨 스트레칭, 충분한 수분 섭취가 기본입니다. 특히 카페인은 적당량에서는 두통을 완화하기도 하지만, 과다 섭취 후 갑자기 끊으면 카페인 금단 두통이 생기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제 동기가 하루에 에스프레소를 서너 잔씩 마시다가 체력이 바닥난 날, 커피를 줄였던 것도 두통을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 두통 일지 작성: 날짜, 부위, 강도, 지속 시간, 동반 증상, 복용 약물 기록
- 진통제는 주 2~3회 이하로 제한, 이를 초과하면 전문의 상담 필수
- 갑작스러운 생애 최악의 두통, 신경학적 증상 동반 시 즉시 응급실 방문
- 감기 이후 지속되는 두통은 이비인후과 먼저 확인
그 동기 일을 겪기 전까지 저는 두통을 어느 정도는 가볍게 봤던 것 같습니다. 전공 책에서 두통의 분류를 외우면서도, 정작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통증이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는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러나는 증상을 진통제로 덮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통증의 위치와 악화 요인을 꼼꼼히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배웠습니다.
반복되는 두통이 있다면, 일단 타이레놀부터 꺼내기 전에 어떤 부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과 함께 아픈지를 먼저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그 관찰이 쌓이면 원인이 보이고, 원인이 보여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nkhospital.net/notice/notice.php?jb_code=50&jb_mode=tdetail&jb_idx=2926#none